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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부림 (리뷰)

[리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T의 위로를 퍼붓는 책

by 진저씨 2022. 9. 11.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저/정지인 역
|곰출판 |2021년 12월 17일
|원제 : Why Fish Don't Exist: A Story of Loss, Love, and the Hidden Order of Life

오랜만에 책을 몰입해서 읽었다.
긴 연휴 기간동안 무언가 집중할 것이 필요했는데, 마침 <상실과 이별, 사랑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는다면 추천한다는 친구의 추천사를 보고 망설임 없이 서점에 가 구매했다. 서점에 직접 방문해서 책을 구매한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

솔직히 이 책의 문체나 서술 방식은 내가 기대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무미건조한 전기 내지 괴상한 과학자 예찬같은 책이 무슨 상실에 대한 위로를 말한다는 것인지. 모름지기 위로에 대한 책이라면 한 줄 한 줄 공감하며 눈물도 좀 흘리고 그런 게 정석 아닌가 싶은데.
그래도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주제와, 왜 이런 책에 이렇게 극찬을 해대는거야? 하는 생각이, 또 기분 전환이 필요한 순간들이 나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책장을 펼치도록 했다.

책을 덮고 나서 생각해보니 무엇보다 작가인 룰루 밀러의 대책없는 솔직함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도록 한 원동력인 것 같다. 작가의 개인적인 상실, 인간적인 과오와 후회에 대한 그녀의 솔직한 고백에서 출발하는 책이었기 때문에 안정을 얻고 싶었던 나를 그녀와 동일시하면서 계속 이어갔을지도.

책에 대한 어떠한 배경 지식이 없이 표지를 열었기 때문에, 절망의 순간 작가가 희망의 지표로 선택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에 대한 탐구, 그리고 집착은 나에게도 기대와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작가와 함께 데이비드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그녀가 알아낸 수 많은 절망적인 사실들, 경외와 분노같은 감정들은 나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때론 배신감에 어안이 벙벙하고, 화가 치밀기도 할 때는 도대체 왜 나는 돈 주고 사서 굳이 이런 얘기를 읽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 이야기의 끝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마침내 도달할 희망과 회복에 대한 염원으로 책을 이어갔던 것 같다. 이렇게 책을 멈추면 너무나 찝찝한 감정을 어쩌지 못할 것 같아서.

이 책은 막연한 희망과 해피엔딩을 선사하는 행복한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 무언가에 대한 집착과도 같은 동경과 갈망을 이야기한다. 결국 찾아오고 마는 허무함과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도 섞여있다. 그러면서도 결국 내려놓지 못한 믿음, 회복, 정말 사소한 부분에서 느껴지는 사랑과 감사, 그리고 사랑에서 오는 황홀함이 얽혀 있어 어떤 면에서는 부럽기도 하다. 이렇게 다면적인 감정을 느끼게 만든 책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이 책은 나를 불편하게 하던 상실에 대한 인지와 평온에 대한 작은 집착을 어느정도 내려놓는데 도움이 되었다.
작가가 이 긴 집착과 탐구를 마친 직후에 책을 마무리 하지 않은 덕분에, 챕터가 지나가면서 요동치는 사실의 파도, 그리고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작가가 열망하고 분노하고 또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의 지금 감정이 정처없이 표류하고 있다고 해도 혼돈 속으로 들어가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가다 보면 끝내 평화가 도달할 것을, 이 작은 것들이 모여서 기어코 큰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모든 존재는 지독히도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정말 중요하고 의미 있다는 것을,
내가 잠시 놓치고 있던 사실들에 대해 굳이 직접적인 언급 없이도 깨닫게 해주었다.
잠시 작은 슬픔에 매몰되어 있던 내게 혼돈을 직면하는 두 지나간 삶에 대한 이야기는 주의를 환기 시키는 데 좋은 역할을 했다.
뭐랄까.. MBTI로 치자면 내가 처음에 바라던 F식 위로는 아니었지만, T에게 썩 괜찮고 담담한 조언을 받아버린 느낌이랄까.
그래, 물고기를 보내주고 새로운 의미를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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